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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각집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

최고관리자님    작성일2019-09-23 17:19:29    671    0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

【요점】

1. 절 입구에 놓인 다리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2. 노행자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선암사 승선교다.
3. 다리는 건너기 위한 구조물, 승선교를 직접 건너보자.
4. 수계산림은 옛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
5. 방하착(放下着)! 그것이 복이라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용

【내용】

유서 깊은 산사 입구에는 대체로 맑은 개울이 있고, 그 위에는 다리까지 놓여있어 운치를 더하게 마련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다리를 건너는 것을, 우리가 사는 남섬부주(南贍部洲)로부터 일곱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를 건너 불국토의 초입인 수미산 자락에 당도함을 압축 표현한 것이라 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순천 조계산 선암사(仙巖寺)⑴에 자리한 ‘승선교(昇仙橋)’⑵를 꼽을 수 있다.

화강암으로 조성한 반달형 모습의 승선교는 규모나 예술적인 면에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구나 이 다리는 석수(石手)의 솜씨가 아니라 예전 이 절 스님들의 정성으로 조성된 것이라 하니 놀라움을 금하기 어렵다.

<1> 절 입구에 놓인 ‘다리’의 특별한 의미

승선교의 모습을 조금 더 감상해 보자. 당연한 일이지만 다리 밑으로는 물이 흐르고, 그 물에는 다리의 모습이 거꾸로 비친다. 그리고 물위의 다리와 물아래 그림자가 합해지면서 자연스레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난다.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지며 빚어지는 그 모습!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외적인 모습일 뿐, 그 의미를 알면 진정한 탄성은 그때부터다.

불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門)을 나타내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공문(空門)이다. 공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한데, 방금 말한 다리와 그림자가 하나가 되면서 형성된 원(圓)이 다름 아닌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연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것은 예외 없이 모두 공(空)하다는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승선교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선암사를 향해 가다 보면, 왼쪽으로 건너게 되어 있는 첫 번째 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서 자기 자신이 ‘공’하다는 아공(我空)의 이치를, 그리고 다시 몇 걸음 더 옮겨 만나는 두 번째 다리를 오른쪽으로 건너면서 삼라만상 모두가 ‘공’하다는 법공(法空)⑶의 이치를 깨닫게 하려는 선조사 스님들의 교육적 배려라 한다.

<2> 노행자(盧行者)의 심장소리를 지금도 들을 수 있는 곳, 승선교!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서는 안 되고, 성․향․미․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서도 안 되나니,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금강경』莊嚴淨土分 第十(장엄정토분 제십)-

장차 중국 선종의 제오조(第五祖) 홍인(弘仁)⑷ 스님의 맥을 잇게 될 노행자(盧行者)⑸의 가슴을 두드렸던 게송(偈頌)이다. 그리고 선암사의 주산(主山)은 산 이름만 조계산(曹溪山)이 아니라 그 게송을 듣는 순간 두방망이질 치던 노행자의 심장소리를 지금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신선의 세계, 그것도 금선(金仙)⑹이신 부처님의 세계로 올라가는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이 ‘승선교(昇仙橋)’다.

어디 그뿐이랴 몇 걸음 옮기면, 다리를 건너오는 사람을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는 ‘강선루(降仙樓)’라는 이층 누각이 눈앞에 우뚝하다. 금선(金仙)께서 내려오시는 누각! 그렇다. 부처를 알아볼 수 있고 마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부처뿐. 그렇다면 강선루는 이미 그 자체가 공의 이치를 깨달은 새 부처를 맞아주시려는 묵은 부처님이시다.

<3> 다리는 건너기 위한 구조물, 직접 건너봐야 한다.

이런 이치에 공감대가 형성되어서일까?! 승선교와 강선루에 대한 화가(畵家)나 사진작가들의 관심과 사랑은 대단하다. 그 가운데서도 다리 아래 공간을 통해 보이는 강선루를 화폭과 필름에 다투어 담는다.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두 구조물을 함께 담으려는 멋진 발상이다. 그런데 그림이나 사진에는 으레 두 번째 다리만 들어가 있다. 그렇다고 아쉬워 할 일은 아니다. 첫 번째 다리는 아공(我空)을 일깨워주려는 것인 만큼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으면 된다.

승선교와 강선루에 담긴 가르침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열반의 문고리를 잡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자칫 느낌만으로 그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다리는 건너기 위한 구조물이다. 직접 건너봐야 한다. 그래야 승선교 건너 피안(彼岸)의 누각인 강선루에 태고로부터 마중 나와 계신 금선(金仙)을 만나 뵐 수 있지 않겠는가?!

<4> ‘수계산림’은 삼아승기겁을 돌아 옛 고향에 이르는 일

그리고 보니 매년 한 번, 태고종 총본산이자 종정 예하께서 주석하고 계신 이곳 선암사에는 금강계단이 개설된다. 백 명 안팎의 행자들이 운집해 수계산림(受戒山林)에 사활을 건다. 산림 막바지에는 절 어귀에 자리한 부도전(浮屠殿)에서 조사스님들을 배알하며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 일보일배(一步一拜)로 승선교를 건너 강선루를 지나 일주문 그리고 대웅전 앞까지 올라간다.

짧지 않은 거리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무릎과 손 그리고 이마에는 피멍과 함께 흙과 잔돌이 박힌다. 삼아승기겁(三阿僧祇劫)을 돌고 돌아 비로소 옛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어찌 힘들고 고달프지 않으랴?! 목이 쉬도록 어버이 서가모니불을 찾는 소리에는 어느새 단내가 밴다. 그래도 그들의 입가에는 음광(飮光) 존자의 미소가 끊임없이 번진다. 그리고 이런 행자님들의 거룩한 모습 위로 두 개의 승선교와 아름다운 강선루의 모습이 겹쳐진다. 높은 곳에 자리하신 채 짐짓 근엄한 모습을 하신 그분께서도 무사히 돌아온 그들의 모습에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리신다.

<5> 복(福)일지라도 내려놓는 것이 ‘방하착’이다.

더럽혀진 옷도 세탁소에 다녀오면 깨끗해지듯 세간의 번뇌로 혼탁해진 마음도 절에 다녀오면 맑아진다고 한다.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금선(金仙)이 되는 다리 승선교를 지나며 공도리(空道理)를 깨닫고 모든 번뇌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리라.

방하착(放下着)! 새내기 사미스님들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절에 가면 그분께서 주시는 것이 복(福)일지라도 가져오려 애쓰지 말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방하착’이라…!

-주(註)-

선암사(仙巖寺) ;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승선교의 치석(治石)과 홍예의 결구(結構)가 벌교 홍교의 것보다 고식(古式)을 띠고 있으며, 그 구조도 웅장한 점으로 보아 영조(英祖) 때 조성하였다는 벌교 홍교보다 조성연대가 앞선다.

아공(我空)과 법공(法供) ; 인무아(人無我) ․인공(人空)에 대칭되는 말로서 법공(法空)이라고도 한다. 무아사상은 원시불교 이후 복잡한 발전과정을 겪어왔지만, 보통 부파불교(部派佛敎)에서는 존재의 5가지 구성 요소가 되는 오온(五蘊)의 가화합(假和合)으로 이루어진 인간에 아트만[自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무아를 설했을 뿐, 무아사상을 일체의 존재에로 확장하지는 않았다. 특히 법(法)을 자성(自性)을 가진 실유(實有)의 것으로 해석하여 ‘아공법유(我空法有)’의 입장을 취하였다. 이에 반하여 대승불교는 무아를 무자성(無自性)의 의미로 보아 인무아뿐 아니라 법무아를 말하는 ‘아공법공(我空法空)’을 주장하였다. 이같이 새로운 해석이 성립된 근거는 초기 대승불교가 부파불교의 실유관(實有觀)을 비판하여 모든 존재는 서로 의존해 있는 것, 즉 연기(緣起)의 존재로 본 데 있다. 만약 제법(諸法)의 자성이 개별적인 진실 된 유(有)라면, 제법의 작용은 일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종교적 실천은 성립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법은 연기의 존재로서 법의 자성은 실재하지 않으며 공(空)이라 하였다. 이와 같은 ‘연기→무자성→공’의 사상은 용수(龍樹)철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홍인(弘忍) ; 중국 선종(禪宗)의 제5조. 후베이성[湖北省] 황메이현[黃梅縣] 출생. 7세 때 제4조 도신(道信)을 따라 출가하여 51세에 대사(大師)가 되었다. 동산(東山)에 살았기 때문에 그 교단을 동산법문(法門)이라 칭하였는데, 700명의 제자를 가르쳐 크게 선풍(禪風)을 선양하였다. 달마(達磨)․혜가(慧可)로 시작되는 중국 선종의 실제적인 확립자로서, 문하에 신수(神秀)․혜능(慧能) 등 10대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이 두 제자로 하여금 남종선(南宗禪)․북종선(北宗禪)의 두 계통으로 나뉘어 남북의 각지에서 그 선(禪)을 펴게 하였다.

혜능(慧能) ;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 육조대사(六祖大師)라고도 한다. 속성 노(盧). 시호 대감선사(大鑑禪師). 난하이[南海] 신싱[新興] 출생.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어느 날 장터에서 《금강경(金剛經)》 읽는 것을 듣고 불도에 뜻을 두어 치저우[蘄州] 황메이[黃梅]로 제5조인 홍인(弘忍)을 찾아가 노역에 종사하기를 8개월, 그런 다음에야 의법(衣法)을 받았다. 676년 난하이 법성사(法性寺)에서 지광(智光)에게 계(戒)를 받고, 이듬해 사오저우[韶州] 차오치[曹溪]에 있는 보림사(寶林寺)로 옮겨 법을 넓혔으며, 그 곳의 자사(刺使) 위거(韋據)의 청을 받고 대범사(大梵寺)에서 설법하였다. 그의 설법을 기록한 것을 《육조단경(六祖壇經)》이라고 한다.

금선(金仙) ; 금빛 나는 신선. 부처님을 달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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