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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각집우상(偶像)과 성상(聖像) -마음의 눈도 어두우면 안경이 필요하다-

최고관리자님    작성일2019-04-17 13:01:55    904    0
우상(偶像)과 성상(聖像) -마음의 눈도 어두우면 안경이 필요하다-

 

내용

【요점】

1. 눈에는 육안(肉眼)과 심안(心眼)이 있다.
2. 성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현을 뵙는 것이다.
3. 단하소불(丹霞燒佛)
4. 철학과 종교의 차이
5. 마음으로 뵙는 어머니
6. 공양의 진정한 의미

【내용】

불교를 우상숭배(偶像崇拜)의 종교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우상숭배란 인위적으로 만든 신불(神佛)의 형상을 대상으로 소원을 비는 미신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매우 불쾌한 일이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 하에서라면 틀린 말도 아니다.

예컨대 흙이나 나무 혹은 쇠붙이로 불·보살의 형상을 만들거나 화폭에 그림을 그려놓고 그 앞에 절하며 복이나 명을 비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곧 그 주인공이니, 그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앞에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흠향(歆饗)할 것을 권하고 믿는다면, 이런 사람에게서 우리는 우상숭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성과 지성의 종교인 불교에서 이런 우(愚)를 범할 리는 없고,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할지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더 이상 망어죄(妄語罪)를 범하지 않도록 해줘야 할지 차제에 그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우상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짚어봐야 할 문제이지 싶다.

[1] 눈에는 육안(肉眼)과 심안(心眼)이 있다.


‘눈’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육안이고 다른 하나는 심안이다. 육안이 좋지 않을 때는 안경을 쓴다. 그렇다면 심안이 어두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의 눈이 어둡다는 말은 진리나 도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럴 때도 안경이 있다.

이를테면 작고하신 어머니가 그리울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방법은 많을 것이다. 어머님께서 쓰시던 물건을 살펴보거나 어머님과 함께 했던 추억이 담긴 장소를 찾아보는 일 등이 모두 마음의 안경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다 효과적이고 확실한 안경이 있다. 어머님의 사진이나 영정이 그것이니 어머님과 대화까지도 가능하다.

아마 이런 모습을 보고 우상숭배라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자들이 부처님의 성적(聖迹)을 찾아 순례를 하거나 성상을 모시고 불공을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마디로 부처님의 성상은 진리에 어두운 중생의 마음에 씌우는 안경에 다름 아니다.

[2] 성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현을 뵙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경을 눈만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부처님의 성상도 그와 같다. 안경을 통해 무언가를 보면서, ‘나는 안경을 통해 보고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성상을 통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와 지혜를 생각하며 ‘아! 나는 성상을 통해서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자비와 지혜를 생각한다’고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눈과 안경 그리고 대경(對境)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면서 사물을 인식하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고 성상을 한낱 인형쯤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눈이 나쁜 사람에게 안경이 소중한 것처럼 불·보살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성상을 소중히 여겨야한다. 유의할 것은 대경을 볼 때 안경을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성상에 끄달리지 않고 그분의 가르침인 지혜와 자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에게 불·보살님의 형상은 단연코 우상이 아닌 성상(聖像)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흙이나 나무 혹은 쇠붙이로 조성한 성상이 우리에게 복과 명을 점지한다고 믿는다면, 안경을 쓰되 안경 넘어 대경(對境)을 보지 않고 안경 렌즈만 보는 사람과 같아 피곤만 가중될 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쇠붙이로 조성한 불상은 용광로를 지나가지 못하고, 나무로 조성한 불상은 불火위를 지나가지 못하며, 흙으로 조성한 불상은 물위를 지나가지 못한다.

[3] 단하소불(丹霞燒佛)


천연단하선사(丹霞天然禪師)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당나라 원화에 복우(伏牛)화상과 더불어 낙양(洛陽) 혜림사(慧林寺)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화상은 법당에서 목불(木佛)을 끌어내려 불을 땠다. 원주(院主)가 이것을 보고 놀라서 큰 소리로 꾸짖었다.

“어찌하여 부처님을 태우는가?”
단하는 막대기로 재를 헤치면서 말했다.
“사리(舍利)를 얻으려고 하오.”
“목불인데 어찌 사리가 있겠는가.”
“사리도 안 나올 바에야 나무토막이지 무슨 부처이겠는가? 나머지 두 보처불(補處佛)도 마저 태워 버릴까보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원주는 두 눈썹이 저절로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제목이 ‘단하소불(丹霞燒佛)’이다.

[4] 철학과 종교의 차이

원불교 신도 가운데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심경을 토로했다.

교당(敎堂) 안에 들어가면, 일반 법당의 경우라면 의당 부처님께서 계셔야 할 자리에 ‘일원(一圓)’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를 나타내고자 함이란다. 얼마나 거룩한가?! 그런데 문제는 그 앞에서 옷깃이 여며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사찰의 대웅전에서 부처님 성상을 뵈면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고 언행을 조심하게 되는데 그런 효과가 ‘일원(一圓)’에는 없다는 것이다. 철학적인 의미는 번뜩이는데 종교적인 영감(靈感)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예기다. 말씀한 그분에 국한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교에서 성상을 모시는 이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해 본 것이다. 불교는 종교다.

[5] 마음으로 뵙는 어머니

<사진 > 태종대 모자상
부산 태종대(太宗臺)는 신라 태종 무열왕이 들렀다는 곳으로서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유명하다. 절경인 이곳이 한때는 인생을 억지로 마감하는 장소로도 유명했던 적이 있다. 이를 막아보고자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분의 아이디어인지 전망대 입구에 모자상(母子像)을 세워놓았는데 그 뒤로 눈에 띄게 그런 일이 줄었다고 한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쪽을 찐 어머니가 두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바다보다 깊고 산보다 높은 사랑으로 자식을 키워주신 어머니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돌로 조성한 그 모습에서 석상(石像)이 아닌 자신의 어머니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곤 ‘우리 어머니께서 이런 내 모습을 보시면…, 이렇게 되라고 그간 나를 곱게 정성 드려 기르셨던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억지로 일생을 마감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마음의 눈이 없어 어머니가 아닌 돌로 만든 조각만 본 사람임에 틀림없다.

[6] 공양의 진정한 의미

성상 앞에 올린 공양물은 나무 끝이나 논밭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성상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려는 불자들의 신심과 정성이 영글고 익어서 이루어진 보리과(菩提果)요, 선열미(禪悅米)다.

어려서 인상 깊었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 해 정초였는데, 할아버님의 제자 분들이 세배를 왔다. 세배를 올리더니 노끈으로 위아래를 단단히 묶은 정종 두 병을 공손히 내놓으며 말했다.

“변변치 않습니다만 저희들의 마음이라 생각하시고 받아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며,
“뭘, 이런 걸…” 하시며 매우 흡족해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 광경이 아름답기도 했으려니와 그 정종 두 병이 제자 분들의 마음이라는 대목이 찡한 채 가슴에 남아있다. 아마 그때 가져온 선물이 과한 것이었다면 감동으로 남아있을 리 만무할 것이다.

부처님께 올리는 과일은 보리(菩提) 나무의 열매다. 탐스러운 과일처럼 원만한 깨달음을 얻을 것을 서원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상 앞에 올리는 공양은 마음을 닦아 얻은 곡식으로 마련한 것으로서 누구나 함께 누릴 수 있고 진정 배부를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이마저도 헐뜯으려 한다. 헐뜯기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다시 억겁을 삼악도(三惡道)로 윤회해야 할 그들의 처지가 진정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영산작법」의 ≪육법공양≫ 가운데 ‘미공양’을 찬탄한 게송이다.

<讚米(찬미)>
解使衆生皆飽滿(해사중생개포만) 어린중생 남김없이 배부름을 알게하여
能令萬劫免飢虛(능령만겁면기허) 만겁토록 배고프고 주린고통 없애주네.
酥酉㐌美味獻諸天(소타미미헌제천) 소락제호 최상의맛 제천중께 올리옵고
香積上方呈我佛(향적상방정아불) 향적세계 으뜸공양 세존님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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