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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각집단오절

최고관리자님    작성일2017-04-04 13:48:07    1,004    0
단오절

불교의 명절 '단오절(端午節)'

 

내용

[요점]
1. 태고종은 적자종단 원융불교를 표방한다.
2. 산문 밖 강릉에서 기리는 범일국사(梵日國師)의 보살행
3. 단오절을 맞이하는 불자의 자세는 어때야?

 

[내용]
   나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빼앗기는 수가 있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일이다. 서두를 무겁게 시작해서 그렇긴 하지만 나라도 그럴진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용어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예컨대 불교용어인 '종교(宗敎)' '장로(長老)' '집사(執事)' 등이 그렇다.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에 보이는 '종교'는 본래 교화의 대상에 따라 말씀하신 내용을 '교(敎)'라 하고 그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종(宗)'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근자에 들어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 전반을 아우르는 말이 되었다.
   경전이나 선원에서 큰스님에 대한 존칭이나 직책 명으로 쓰이는 '장로'나 '집사'도 절 집안에서 잘 쓰지 않아 생경해 지더니 이제는 국어사전에조차 기독교 용어인 양 올라있거나 소개순위에서 밀려 있다.
   불교의 세(勢)가 위축되는 데 따른 현상인 것 같아 마음 아프다. 못난 사람이 조상을 들먹인다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전 일을 들추게 되는데, 과거에는 불교 특히 선종에서는 이른바 이장위종(理長爲宗)의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재래 토착신앙은 물론,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주변의 문화를 흡수해 들였다. 도교의 신앙인 시왕(十王)·칠성(七星)·조왕(竈王) 등을 받아들임이 그랬고, 영가를 모시는 도구로서 위패(位牌)는 유교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다.

 

<1> 태고종은 적자종단(嫡子宗團) 원융불교를 표방한다.
   음력 5월을 목전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행사에도 이런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가 그것이다. 불교계에서 그간 남의 일인 양 방관만 하였으니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단오제는 본래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하나인 사굴산문(闍堀山門)의 개산조 범일국사(梵日國師)를 기리는 명절이다. 그런데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된 지금까지 불교계에선 이렇다 할 관심조차 없으니 어찌된 일인가.
   혹, 우리 태고종은 신라 헌덕왕 당시 도의국사(道義國師)를 종조(宗祖)로 모시는 가지산문(迦智山門)의 법통을 이어받고 있다하여 관계가 없다할 것인가? 그렇다면 회통(會通)의 이치를 모르는 소치다. 신라의 구산선문이 모두 육조 혜능 선사의 남종선 법맥을 잇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태고종이 한국불교의 적자종단으로서 원융불교를 표방하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면 단오절을 이대로 좌시해선 결코 안 될 것이다.
  '강릉단오제'는 단오를 전후하여 범일국사와 관련이 있는 여러 서낭당에서 차례로 제사를 지내는 마을의 공동축제로서 1967년 중요무형문화제 제13호로 지정되었고,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관령 국사성황(大關嶺國師城隍)과 대관령 여성황을 대관령 산꼭대기에서 맞이해 시내 성황당으로 모셔 지내는 단오굿이 그 백미다. 서낭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범일국사이시며, 중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국사께서는 입적 후 강릉의 수호신이 되셨다는 것이다.

 

2. 산문 밖 강릉에서 기리는 범일국사의 보살행
   강릉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녕을 돌보아 주시는 국사를 일 년에 한 번, 남대천에 설치한 본제청으로 모셔 본제를 시작하여 며칠 간 무당굿과 '관노(官奴)탈놀이'를 하며 감사의 제를 올리니 이 것이 곧 강릉단오제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35세 때인 1603년(선조 36)에 강릉에 가서 단오제를 구경하였다는 기록이 있음으로 미루어 그 이전부터 거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특정 스님을 기리는 행사가 산문(山門) 밖에서 이렇듯 긴 역사를 지니고 거행되고 있음은 참으로 드문 일이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사의 위엄과 덕망이 어떠하셨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국사께서는 신라 헌덕왕 2년(810) 명주[지금의 강릉] 도독을 지낸 김술원(金述元)이 부친이시고, 어머니는 문씨(文氏)이신데 태양을 머리 위로 받드는 태몽을 꾸고 13개월 만에 태어나셨다고 한다.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비구계를 받고 흥덕왕 6년(831) 2월 왕자 김의종(金義琮)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고승을 두루 참방하다 염관제안(鹽官齊安) 선사를 만났고 그로부터,

 

  도는 닦는 것이 아니라 더럽히지 않는 것이며, 부처나 보살에 대한 소견을 내지 않는 평상의 마음이 곧 도이다.

 

라는 말씀을 듣고 선지(禪旨)를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제안 선사의 문하에서 6년 동안 머물다가 약산유엄(藥山惟儼) 선사를 찾아가 선문답을 나누고 인가를 받은 후, 소주(韶州)로 가서 6조 혜능 선사의 탑에 참배하고 귀국(847)하였다.
   그로부터 851년까지 충남 백달산(白達山)에 머물면서 정진하다 명주 도독의 청을 받아 굴산사(掘山寺)로 옮겼다. 명주는 국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굴산사를 중심으로 40여 년 동안 후학을 가르쳤으니, 이것이 곧 사굴산문(闍堀山門)이 열리게 된 연기다.
   후학을 지도하는 국사의 입장은 단호하여,

 

부처의 뒤를 따르지도 말고, 다른 사람의 깨달음도 따르지 말라. 앞뒤 사람을 바라보고 돌아볼 것도, 더 이상 닦고 얻을 바도 없는 본래 부처로서의 철두철미한 자기 본분의 자각을 수행의 목표로 삼아라.

 

고 독려하였으며, 임종에 이르러서는,

 

세속의 부질없는 정분으로 어지러이 상심하지 말 것이며, 모름지기 스스로의 마음을 지켜 큰 뜻을 깨뜨리지 말라.

 

고 당부하였다 한다.
   국사에 관한 말씀은 『삼국유사』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 조(條)에도 보인다. 정취보살을 낙산사에 모시게 된 연기에 관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굴산조사(崛山祖師) 범일이 태화 연간(827-835)에 당나라에 들어가 명주 개국사에 이르니 왼쪽 귀가 없어진 한 사미승이 여러 승려들의 끝자리에 앉아 있더니 조사에게 말했다.
「저도 또한 고향사람입니다. 집은 명주의 경계인 익령현 덕기방(翼嶺縣 德耆坊)에 있습니다. 조사께서 후일 고향에 돌아가시거든 반드시 내 집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이윽고 조사는 총석(叢席-많은 승려들이 모여있는 곳)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염관(중국 항주 염관현 진국해창원에 있었던 齊安禪師)에게서 법을 얻고 회창(會昌) 7년 정묘(847)에 본국으로 돌아오자 먼저 굴산사를 세워서 불교를 전했다.
대중(大中) 12년 무인(858) 2월 보름날밤 꿈에, 전에 보았던 사미승이 창문 밑에 와서 말했다.
「지난 날 명주 개국사에서 조사와 약속하여 이미 승낙을 얻었는데, 어찌 이리 늦는 것입니까?」
조사는 놀라 꿈에서 깨자 사람들 수십 명을 데리고 익령 경계로 가 그가 사는 곳을 찾았다. 낙산 아랫마을에 한 여인이 살고 있으므로, 이름을 묻자 덕기(德耆)라고 했다. 그 여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 겨우 여덟 살이 되자 마을 남쪽 돌다리 가에 나가 놀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와 같이 노는 아이 가운데 금빛이 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 말을 조사에게 했다. 조사는 놀래고 기뻐하며 그 아이가 함께 놀았다는 다리 밑으로 갔다. 찾아보니 물속에 돌부처 하나가 있었다. 꺼내보니 왼쪽 귀가 끊어져 있고 전에 만난 사미승과 같았다. 이것이 바로 정취보살의 불상이었다. 이에 간자(簡子. 점치는 대나무 조각)를 만들어 절을 지을 곳을 점쳐보니 낙산 위가 가장 좋으므로 그 곳에 불전 3간을 짓고 그 불상을 모셨다.



046.jpg
[사진] 범일국사 진영

 

<3> 단오절을 맞이하는 불자의 자세는?
국사는 871년 경문왕이, 880년에는 헌강왕이, 887년에는 정강왕이 각각 국사로 모시고자 했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임종시 후학들에게 당부한 말씀에서와 같이 권승(權僧)이 아닌 민중의 사표로서 본분에 충실코자 스스로 모범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이 점이 오늘까지 강릉단오제의 정신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이어져왔고 이제는 강릉을 넘어 세계에 전해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명약관화하다. 강릉단오제가 그간 강릉시민들이 기려온 범일국사의 보살행(菩薩行)과 그 정신을 심지로 지켜온 불꽃이라면, 불교계에서는 마땅히 기름 역할을 맡아 그 불꽃을 더욱 키워야 할 것이다.
오월에는 이렇다 할 불교 행사가 없다고 하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간 수수방관했던 것이다. 그 방법이 어떠해야 할지는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너무 오래 방치했던 터라 국사께 죄송하고 강릉시민에게 부끄럽다.



-주(註)-
⑴종교(宗敎) ; 종(宗)과 교(敎)의 뜻. 『화엄오교장』 권1에 '분교개종(分敎開宗)'의 설이 있다. 종(宗)과 교(敎) 두 자로 나누어 해석하였는데, 교화의 대상에 적응해서 설시(說示)된 불타의 교설을 '교'라 하고, 그 교 가운데 각각 주된 내용을 '종'이라 한다고 했다. 근자에 서구의 사상이 들어옴에 신(神)과의 재결합을 의미하는 'religion'의 번역어로 취택되어, 불교가 종교 가운데 하나인 양 오해되기에 이르렀다.
⑵장로(長老) ; 학덕이 높고 불도에 들어온 지 오래되어 대중의 존경을 받는 스님을 일컫는 말. 또는 선원에서 주지(住持)·화상(和尙)에 대한 경칭(敬稱).
⑶집사(執事) : 여러 가지 잡무를 처리하는 소임. 선원에서는 지사(知事)라고도 함.
⑷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 ; 원명은 『화엄일승교의분제장(華嚴一乘敎義分齊章)』. 화엄 교학(華嚴敎學)에 대한 개설서일 뿐 아니라, 일종의 불교개론 체제로 되어 있다. 전체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엄종의 입장에 서면서도 불교 전체에 대한 관점을 무시하지 않은 체계적인 역작으로 또 다른 그의 저서 『탐현기(探玄記)』와 함께 화엄 교학을 집대성한 것이다.
⑸위패(位牌) ; 영패(靈牌). 위판(位版). 신주(神主). 망자(亡者)에 공양하기 위해 법명을 써서 영가(靈駕)의 의지처로 삼게 하는 표찰(標札)이다. 후한(後漢. 2~4세기)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가(儒家)에서 사용하던 것을 불교에서 모범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본래는 10~40㎝의 율목(栗木) 판에 생전의 관위(官位)와 성명 등을 기재하여 신령(神靈)의 의지처로 사용했다고 한다.
⑹구산선문(九山禪門) ; 통일 신라 이후 불교가 크게 흥할 때, 중국에서 달마의 선법(禪法)을 받아 가지고 와 그 가풍을 지켜 온 아홉 산문. 『석문의범』 대예참례(大禮懺禮) 제29항에는 구산의 개산조(開山祖)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해외전등 도의국사(海外傳燈 道義國師), 나계정주 범일국사(螺髻頂珠 梵日國師), 상기만천 철감국사(霜氣滿天 哲鑑國師), 무설유양 무염국사無(舌愈揚 無染國師), 산신현청 도헌국사(山神現請 道憲國師), 남악분휘 혜철국사(南岳分輝 慧徹國師)
⑺도의국사(道義國師) ; 신라 승려. 호는 명적(明寂). 속성은 왕(王)씨. 784년 입당하여 대산(臺山)으로 갔다가 광부(廣府) 보단사(寶壇寺)에서 비구계를 받고, 다시 조계(曹溪)로 가 육조의 영당(影堂)에 참배한 뒤, 강서의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에서 서당지장(西堂智藏) 선사로부터 의심을 결단하여 법을 이어받고, 이름을 도의(道義)로 고침. 백장산(百丈山) 회해(懷海)에게 법요를 받고, 헌덕왕(821)년 귀국하여 전남 장흥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에 있으면서 남종선을 폄.
⑻굴산사(掘山寺)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있던 절. 신라 문성왕 13년(851)에 범일국사 창건. 보물 제85호인 부도(浮屠)와 보물 제86호인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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