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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송암

최고관리자님    작성일2017-03-27 13:13:15    886    0
송암

心口相應 稱嘆三寶 現前三昧 圓音尊者 朴松岩 喜德 大宗師 頌德碑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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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께서 娑婆世界에 應化하신 本懷가 欲濟迷倫하여 度脫三界함에 있으신지라 含靈之根機가 衆多함에 隨機說法으로 八萬法門을 開示하셨다. 其中에 禮敬諸佛 稱讚如來 廣修供養 등 普賢菩薩十種大願의 實踐은 成佛解脫之要門이며 禮拜 讚嘆 作願 등 五念門의 修行은 淨土往生의 正路라고 하였으니 梵唄作法의 如法한 法要가 아니면 무엇으로 이를 行할 수 있으리요. 故로 陳思王은 梵音唄匿을 作하고 眞鑑國師는 이를 槿域에 傳來하여 現今까지 傳承케 하였던 것이다. 眞鑑이후 梵唄傳承에 盡力하신 魚丈들이 星羅에 補益하지만 近世에 이르러 世尊之本懷를 曲解한 몇몇 僧徒의 主張에 따라 斷絶之境에 處한 梵唄作法을 繼承中興하는데 積功獻身한 세분의 스님이 계셨으니 그 가운데 한 분이 梵唄中興 第三祖로 推仰받는 松巖大宗師이다. 松巖스님은 舊韓末 金玉均과 더불어 開化黨을 組織하여 開化運動을 先導했던 民族的 先覺者이자 高宗皇帝의 駙馬인 朴泳孝先生의 長孫으로 佛紀 2459年(西紀1915) 乙卯年 10月 14日 서울 奉元寺에서 出生하였으니 俗名은 喜德이며 京城商業學校를 卒業하고 1933년 出家하여 朴雲虛和尙을 恩師로 得度하니 法名이 基煥이다. 그後 奉元寺 永進講院에서 一代時敎의 履歷을 마치고 當代 最高의 魚山宗匠인 李月河․南碧海 兩和尙을 師事하면서 梵唄修學에 專念하여 그 精髓를 體得하였다. 己卯年 四月 金南湖和尙의 丈室에 들어 印可를 得하고 建幢하니 堂號가 松巖이다. 그後 스님께서는 京鄕各地의 大小寺刹을 歷訪하면서 靈山齋를 奉行하여 佛敎儀式의 殊勝함을 드러내 보이고 梵唄를 傳授하였으므로 梵唄의 重要性을 國家로부터도 認定받아 1973년 梵唄가 大韓民國重要無形文化財 第50號로 指定받고 그 技能保有者가 됨으로써 1977년 奉元寺 靈山齋가 國家重要無形文化財로 指定 받게 되는 礎石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1987년에는 奉元寺에 玉泉梵音大學을 設立하고 梵唄敎育에 精進하여 奉元寺를 靈山齋의 본고장으로 만들었고 梨花女大 濟州大學 京城舞踊專門學校 等에 出講하여 梵唄作法을 敎育함으로써 全國의 梵唄學人은 스님의 敎恩을 입지 않은이가 없게 되었다. 스님의 梵唄作法은 그 眞價를 國際的으로도 認定받아 美國 獨逸 日本 泰國 等 外國에서도 招請奉行케 하여 國威를 宣揚하고 國家間의 文化交流에도 크게 貢獻하였으므로 1994年 2月 1日 大統領으로부터 玉冠文化勳章을 授與받았다. 이렇듯 後學 養成과 佛法弘布를 報恩의 業으로 삼고 盡力하던 스님은 2000年 2月 1日 奉元寺 雲水閣에서 沐浴正坐하고 脫却五陰하니 法臘은 67歲요 世壽는 85歲 이다. 이에 스님의 德化를 입은 後學의 한사람으로 欽慕의 情을 가지고 여기에 簡單하게 스님의 行狀을 記錄하면서 絶句 하나를 지어 그 德을 기린다.

魚山老人唱唄匿 雙溪黑頭拍長短 松巖童子興起舞 月河長流碧海澖

佛紀 2545年 重五節
韓國佛敎太古宗 中央宗會議長 芸谷 朴用勳 謹撰

 

송암

심구상응 칭탄삼보 현전삼매 원음존자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삼보를 찬탄하시고, 삼매를 놓지 않으신 원음존자

박송암 희덕 대종사 공덕비


 

내용

세존께서 사바세계에 응화하신 본회가 욕제미륜(欲濟迷倫)하여 도탈삼계(度脫三界)함에 있으신지라 함령지근기(含靈之根機)가 중다(衆多)함에 수기설법(隨機說法)으로 팔만법문을 개시하셨다. 기중에 예경제불(禮敬諸佛) 칭찬여래(稱讚如來) 광수공양(廣修供養) 등 보현보살십종대원의 실천은 성불해탈지요문이며 예배 찬탄 작원 등 오념문(五念門)의 수행은 정토왕생의 정로라고 하였으니 범패작법의 여법한 법요가 아니면 무엇으로 이를 행할 수 있으리요. 고로 진사왕(陳思王)은 범음패익(梵音唄匿)을 작(作)하고 진감국사(眞鑑國師)는 이를 근역에 전래하여 현금까지 전승케 하였던 것이다. 진감이후 범패전승에 진력하신 어장들이 성라(星羅)에 보익(補益)하지만 근세에 이르러 세존지본회를 곡해한 몇몇 승도의 주장에 따라 단절지경에 처한 범패작법을 계승 중흥하는데 적공 헌신한 세분의 스님이 계셨으니 그 가운데 한 분이 범패중흥 제3조로 추앙받는 송암 대종사이다. 송암 스님은 구한말 김옥균과 더불어 개화당을 조직하여 개화운동을 선도했던 민족적 선각자이자 고종황제의 부마인 박영효 선생의 장손으로 불기 2459년(서기1915) 을묘년 10월 14일 서울 봉원사에서 출생하였으니 속명은 희덕(喜德)이며 경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출가하여 박운허(朴雲虛) 화상을 은사로 득도하니 법명이 기환(基煥)이다. 그후 봉원사 영진강원에서 일대시교의 이력을 마치고 당대 최고의 어산종장인 이월하(李月河)․남벽해(南碧海) 양화상을 사사하면서 범패수학에 전념하여 그 정수를 체득하였다. 기묘년 4월 김남호(金南湖) 화상의 장실에 들어 인가를 득하고 건당하니 당호가 송암(松巖)이다. 그후 스님께서는 경향각지의 대소사찰을 역방하면서 영산재를 봉행하여 불교의식의 수승함을 드러내 보이고 범패를 전수하였으므로 범패의 중요성을 국가로부터도 인정받아 1973년 범패가 대한민국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받고 그 기능보유자가 됨으로써 1977년 봉원사 영산재가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게 되는 초석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1987년에는 봉원사에 옥천범음대학을 설립하고 범패교육에 정진하여 봉원사를 영산재의 본고장으로 만들었고 이화여대 제주대학 경성무용전문학교 등에 출강하여 범패작법을 교육함으로써 전국의 범패학인은 스님의 교은을 입지 않은 이가 없게 되었다. 스님의 범패작법은 그 진가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미국 독일 일본 태국 등 외국에서도 초청 봉행케 하여 국위를 선양하고 국가 간의 문화교류에도 크게 공헌하였으므로 1994年 2月 1日 대통령으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렇듯 후학 양성과 불법홍포를 보은의 업으로 삼고 진력하던 스님은 2000年 2月 1日 봉원사 운수각에서 목욕정좌하고 탈각오음하니 법납은 67세요 세수는 85세 이다. 이에 스님의 덕화를 입은 후학의 한사람으로 흠모의 정을 가지고 여기에 간단하게 스님의 행장을 기록하면서 절구 하나를 지어 그 덕을 기린다.

魚山老人唱唄匿(어산노인창패익) 어산의 노인이 범패를 하니
雙溪黑頭拍長短(쌍계흑두박장단) 쌍계의 흑두타가 장단을 맞추네.
松巖童子興起舞(송암동자흥기무) 송암 동자 흥겹게 춤을 추니
月河長流碧海澖(월하장류벽해한) 월하는 길게 흐르고 벽해는 드넓구나.

불기 2545년 중오절
한국불교 태고종 중앙종회의장 운곡 박용훈 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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