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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월하

최고관리자님    작성일2017-03-27 12:45:52    857    0
월하

爲振梵音 重興梵唄 月河堂慧芸大宗師功德碑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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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法名은 慧芸이요 法號는 月河며 俗姓은 李氏니 朝鮮朝 高宗十二年 丙子에 誕生하였다. 스님의 法緣을 接한 者는 모두가 스님을 師匠으로 推仰하였고 一生을 本寺에서 駐錫하며 示寂時까지 衆生敎化와 後進養成에 盡力하여 恒常毒箭之喩로 嚴히 警策하시며 勉學을 督勵하였다. 스님은 禪敎를 兼修하였으니 일찌기 一代時敎를 마치고 本寺에 講院을 設立하였으며 金剛戒壇을 開設하여 後學들에게 文殊菩薩의 智慧와 普賢菩薩의 定行을 일깨워 주었다. 한편 스님은 本寺의 東山稜線 너머에 있었던 茶毘場을 保任處로 하며 一點煙氣로 一生을 마감하는 諸靈을 薦度하여 地藏菩薩의 大願을 몸소 實踐하였다. 스님은 이에 그치지 않고 一般大衆의 信心을 高揚키 위해 東明 大圓 두분 스님을 師事하여 梵唄를 傳受하니 듣보는이 모두가 感歎하여 或者는 妙音菩薩의 化現이라 하였고 或者는 眞鑑禪師의 後身이라 하였다. 이를 後學에게 敎授하니 이로부터 諸佛菩薩께는 如法한 供養과 讚嘆을 올릴수 있게 되었고 뭇 衆生에게는 甘露와 같은 梵音이 베풀어지게 되어 佛菩薩께서 加持하시고 僧俗은 歡喜하여 信心을 되찾았으며 鐵圍山은 부서져 九泉의 넋들은 제길을 가게 되었다. 스님의 家風은 解行과 梵唄를 具備함에 있었으니 民族의 正氣를 抹殺하려는 日帝下에서는 佛敎가 韓民族魂의 支柱임을 闡明하고 佛敎重興의 旗幟를 높이들어 愛國愛族의 模範이 되었다. 스님의 家風은 師資相承되어 及其也 佛紀 二五0七年 十一月에 朴松岩和尙이 技能保有者 第五十號(梵唄)로 指定되었고 佛紀 二五三一年 十月에는 靈山齋가 大韓民國重要無形文化財로 指定되는 등 國家的重要行事에 있어서는 佛敎界를 代表하여 그 圓滿成就를 發願하기에 이르렀다. 스님의 家風을 이어감을 念願한 朴松岩和尙에 의해 佛紀 二五三八年 九月에는 玉泉梵音大學이 設立되었으니 이는 全佛敎界의 宿願事業으로 스님이 뿌린 種子가 開花케된것이다. 스님의 弟子로는 鏡海 碧海 萬城 雲坡 起月 錦海 華潭 龍海 萬奉 得成 一波 圓明 德山 松岩 暎月 慧鏡 永善 碧庵등 그 數를 헤아리기 어려우며 特히 朴松岩和尙은 南碧海和尙의 代를 이어 梵唄重興祖月河門下 第三世가 된다. 佛紀 二四九五年 至月 二九日 스님은 臨終偈를 남긴채 坐脫하니 歲壽는 八十六이였다. 스님의 가르침을 門으로 하여 法性海에 들고자하는 弟子들이 달무리 서듯 한자리에 모여 스님의 臨終偈를 가슴에 새기고 貞石를 가려 스님의 法身인양 奉安하여 功德을 기렸다.

臨終偈. 自性彌陀淨國土 莫道三界如火宅 身滅聲存轉法輪 寸步不移安樂刹

佛紀二五三八年 甲戌 十月 日 立碑

兩足山人 滿春 沈祥鉉謹撰

 

월하

위진범음 중흥범패
부처님의 말씀을 떨치기 위해 범패를 중흥하신

월하당 혜운대종사 공덕비


 

내용

스님의 법명은 혜운(慧芸)이요 법호는 월하(月河)며 속성은 이씨니 조선조 고종12년 병자에 탄생하였다. 스님의 법연(法緣)을 접한 자는 모두가 스님을 사장(師匠)으로 추앙하였고 일생을 본사에서 주석하며 시적시(示寂時)까지 중생교화와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항상 독전지유(毒箭之喩)로 엄히 경책하시며 면학을 독려하였다. 스님은 선교를 겸수하였으니 일찍이 일대시교를 마치고 본사에 강원을 설립하였으며 금강계단을 개설하여 후학들에게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정행(定行)을 일깨워 주었다. 한편 스님은 본사의 동산능선(東山稜線) 너머에 있었던 다비장을 보림처로 하며 일점 연기로 일생을 마감하는 제령을 천도하여 지장보살의 대원을 몸소 실천하였다. 스님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일반대중의 신심을 고양키 위해 동명(東明) 대원(大圓) 두분 스님을 사사하여 범패를 전수하니 듣보는 이 모두가 감탄하여 혹자는 묘음보살(妙音菩薩)의 화현이라 하였고 혹자는 진감선사(眞鑑禪師)의 후신이라 하였다. 이를 후학에게 교수하니 이로부터 제불보살께는 여법한 공양과 찬탄을 올릴 수 있게 되었고 뭇 중생에게는 감로와 같은 범음이 베풀어지게 되어 불보살께서 가지(加持)하시고 승속은 환희하여 신심을 되찾았으며 철위산은 부서져 구천의 넋들은 제 길을 가게 되었다. 스님의 가풍은 해행(解行)과 범패를 구비함에 있었으니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려는 일제하에서는 불교가 한민족혼의 지주(支柱)임을 천명하고 불교중흥의 기치를 높이 들어 애국애족의 모범이 되었다. 스님의 가풍은 사자상승되어 급기야 불기 2507년 11월에 박송암 화상이 기능보유자 제50호(범패)로 지정되었고 불기 2531년 10월에는 영산재가 대한민국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국가적 중요행사에 있어서는 불교계를 대표하여 그 원만성취를 발원하기에 이르렀다. 스님의 가풍을 이어감을 염원한 박송암 화상에 의해 불기 2538년 9월에는 옥천범음대학(玉泉梵音大學)이 설립되었으니 이는 전불교계의 숙원사업으로 스님이 뿌린 종자가 개화케 된 것이다. 스님의 제자로는 경해(鏡海) 벽해(碧海) 만성(萬城) 운파(雲坡) 기월(起月) 금해(錦海) 화담(華潭) 용해(龍海) 만봉(萬奉) 득성(得成) 일파(一波) 원명(圓明) 덕산(德山) 송암(松岩) 영월(暎月) 혜경(慧鏡) 영선(永善) 벽암(碧庵)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우며 특히 박송암 화상은 남벽해 화상의 대를 이어 범패중흥조 월하문하 제삼세가 된다. 불기 2495년 지월 29일 스님은 임종게를 남긴 채 좌탈(坐脫)하니 세수는 86이였다. 스님의 가르침을 문으로 하여 법성해(法性海)에 들고자하는 제자들이 달무리 서듯 한자리에 모여 스님의 임종게를 가슴에 새기고 정석(貞石)를 가려 스님의 법신인양 봉안하여 공덕을 기렸다.

<臨終偈(임종게)> 自性彌陀淨國土(자성미타정국토) 자신의 성품이 아미타불의 청정한 국토이니
莫道三界如火宅(막도삼계여화택) 삼계가 화택과 같다고 이르지 마라.
身滅聲存轉法輪(신멸성존전법륜) 육신은 멸해도 소리가 남아 법륜을 굴리니
寸步不移安樂刹(촌보불리안락찰) 한발자국 옮기지 않아도 안락국토일세.

불기 2538년 갑술 10월 일 입비

양족산인 만춘 심상현 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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