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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각집‘국수경(經)’과 ‘범벅경’

최고관리자님    작성일2018-03-26 16:27:15    1,019    0
‘국수경(經)’과 ‘범벅경’

 

내용

【요점】

예전 어느 마을에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큼 사이가 좋은 두 아낙이 있었다. 좋은 일이나 언짢은 일이나 함께 나누고 절에도 같이 다니며 신심을 키워가는 친자매보다도 가까운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 별스럽지 않은 일로 두 사람 사이가 갑자기 서먹하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지난 초하루법회 때 큰스님께서,

“주력(呪力)이라 함은, 특정 불․보살님의 명호나 다라니를 일념으로 지송하는 것을 말한다. 열심히 하면 재난을 물리칠 수 있고 복을 부르게 되며, 재앙으로부터 몸을 지키게 하는 수행법이다. 그런데 관세음보살님은 우리 중생들에게 어머님 같은 어른이시니 평소 끊임없이 그 분의 명호를 염송하라.”고 주력에 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것이 그 발단이었다.

【내용】

1. ‘국수경(經)’과 ‘범벅경’

이제 편의상 두 아낙을 ‘국수보살’과 ‘범벅보살’이라 불러 분란이 일어나게 된 속사정을 알아보기로 하자.

큰스님 말씀대로 국수보살이 신심을 내어 관음주력(觀音呪力)을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러자 이를 본 범벅보살이 말하기를,
“국수보살님, 관세음보살이 아니고 간세음보살이라고 하셔야 되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두 보살 사이에 문제가 된 것은 ‘관세음보살’과 ‘간세음보살’ 가운데 어느 쪽이 옳으냐 하는 것이었다. 아녀자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던 시절인지라 두 보살 모두 이치가 아닌 들은 바를 주장하는 것으로서, 음성교체세계(音聲敎體世界)가 지닌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두 보살은 서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조금 지나자 누구 말이 옳은지는 뒷전이고 자존심 문제로 비약했다. 때문에 두 사람의 언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국수보살이 제안을 했다.
“이럴 게 아니라 내일 모레 글피가 초하루이니, 그때 큰스님께 여쭈어봅시다.” 고 하였고, 달리 방법이 없었던지라 범벅보살도 곧 동의했다.
그 날 밤이었다. 국수보살이 잠자리에 들어 곰곰이 생각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자신의 주장이 옳은 것 같았는데 왠지 불안했다. 범벅보살과 친한 만큼 지는 것도 싫었다. 만에 하나 자신의 주장이 틀리면 평생 굽 잡혀 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국수보살은 동도 트이기 전에 일어나 국수를 만들었다. 요즈음 같지 않아 손이 많이 가는 아주 귀한 음식이어서 혼인이나 생일과 같이 특별한 때나 맛을 보는 그런 음식이었다.
정성스레 만든 국수를 들고 집을 나선 국수보살의 발길은 평소 다니던 절 쪽을 향하고 있었다. 절에 도착하니 어느덧 사시마지(巳時摩旨) 쇳소리가 들려왔다. 국수보살은 대웅전으로 들어가 간단히 삼배만 올리고 이내 큰스님 처소로 갔다. 그리고 큰스님께 정성껏 국수를 말아 올렸다. 때 아닌 국수공양에 웬일인가 싶었지만 큰스님께서는 달게 드셨다. 공양을 다 드시자 국수보살이 큰스님께 조심스레 여쭈었다.
“큰스님, 주력할 때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면 되지요?”
“아무렴요,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당연히 관세음보살이 맞으니 주저 없이 대답해 주셨다. 그러자 국수보살이 비로소 안도하며 속내를 털어놨다.
“아 글쎄, 범벅보살이 말하기를 ‘간세음보살’이라고 해야한다고 우기지 뭡니까. 그래서 모레 초하룻날 누구 말이 옳은지 큰스님께 여쭈어 보기로 했습니다. 하오니 관세음보살이 맞는다고 분명히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고 했다. 큰스님께서는 그제야 방금 드신 국수공양의 의미를 아실 수 있었다. 어쨌거나 국수보살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했다.
한편, 범벅보살도 심경이 편하질 않았다. 본인의 주장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딱히 근거가 없다보니 왠지 불안했다. 한 번 불안한 생각이 들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도 달랠 겸 밭에 나가 잘 익은 늙은 호박 하나를 골랐다. 무거운 줄도 모르고 집으로 들고 왔다.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범벅을 만들었다. 이유는 국수보살과 같았다. 시간적으로 차이가 있을 뿐 수순(隨順)도 같았다. 큰스님께서는 이미 사건의 전말을 알고 계셨던지라 호박범벅을 달게 드시고는 범벅보살도 안심시켜 내려 보내셨다.
드디어 초하루가 되었다. 두 보살은 전날 다녀간 일에 대해서는 시치미를 떼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히 절로 올라갔다. 불공과 법회가 끝나자 함께 큰스님 처소로 같다. 두 보살은 모두 의기양양했다. 국수와 범벅의 힘이었다. 드디어 큰스님과 두 보살이 함께 자리하자 국수보살이 말문을 열었다.
“큰스님 주력할 때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면 되지요?”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범벅보살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이었다. 그래서 어제 큰스님 뵌 일을 발설해서는 안 됨에도 황급히,
“큰스님, 어제 ‘간세음보살’이 맞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라고 했다.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아무렴요, 간세음보살도 맞습니다.”
두 보살은 기가 막혔다. 그래서 합창이라도 하듯,
“큰스님― ”
했다. 큰스님께서는 빙그레 미소를 머금으시더니 말씀하셨다.
“두 분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국수경(經)’을 보면 관세음보살로 나와 있고, ‘범벅경’을 보면 간세음보살로 되어 있으니까요.”
순간 두 보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큰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두 분 보살님은 평소 남들이 부러워하리만큼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지 않으셨습니까. 헌데 이런 일로 두 분 사이에 틈이 생긴다면 관세음보살님께서도 간세음보살님께서도 모두 가슴 아파하시지 않겠는지요?! 중요한 것은 명호(名號)가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염(念)하는가 입니다. 도반(道伴)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이기려는 마음으로 행하는 주력이라면 과연 그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두 보살은 조용히 일어나 큰스님께 삼배하고 물러 나왔다. 그리고 서로 눈길이 마주치자 국수보살이 먼저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범벅보살 나 몰래 ‘범벅경’을 봤더구먼.”
그러자 범벅보살이,
“그러시는 국수보살님께서는 ‘국수경’을 보셨다면서요.”
두 보살은 한참 동안 허리를 펴지 못했다.

2. 미워할 수 있는 것도 선연(善緣)이다.

그리고 보니 학창시절 수학시간에 공부했던 ‘집합(集合)’이 생각난다. 사전적 의미라면 ‘특정 조건에 맞는 원소들의 모임’을 말한다. 임의의 한 원소가 그 모임에 속하는지를 알 수 있고, 그 모임에 속하는 임의의 두 원소가 같은가 다른가를 구별할 수 있는 명확한 표준이 있는 것을 이른다. 그리고, 이들 집합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가운데 ‘교집합(交集合)’이라는 것이 있다. 두 집합 A와 B가 있을 때 집합 A, B에 공통으로 속하는 원소들로 이루어진 집합을 말하며, ‘A∩B’로 나타낸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물론, 반목하고 미워하는 것도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는 개체끼리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은 모두 무한하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깊은 인연인지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점이 많고 뜻이 같지 않더라도 시공을 함께 하고 있다는 교집합! 이런 정도의 공감대를 갖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원결(怨結)이 있다면 지금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럴 기회조차도 다시 얻기 어렵다. 우리가 서로를 보듬고 공경해야만 하는 이유다. 특히 불자임을 자처하면서 마음 씀씀이가 불교를 믿기 전만 못하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일 도반을 속이거나 업신여겨 옳고 그름을 논한다면, 이와 같은 출가는 전혀 이익이 없느니라(若也欺凌同伴 論說是非 如此出家 全無利益).

불일보조(佛日普照) 국사께서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하신 말씀이다. 억설이 아니라 미워할 대상이 있는 것조차도 수행자에게는 소중한 기회다. 모든 만남이 선연(善緣)임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과 필자가 금생에 사람의 몸을 얻고 불법을 만나 이런 말씀을 나누고 있음은, 억 만 번 고쳐 생각해도 정말이지 다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여러 번 구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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