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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극락전

최고관리자님    작성일2017-10-18 09:18:50    1,323    0

극락전

 

내용

【요지】

본사에는 대웅전을 위시하여 삼천불전 미륵전 극락전 만월전 명부전 칠성각 운수각 동불당 종각 등 여러 당우가 자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극락전은 6남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는 애절한 사연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내용】

<1> 고즈넉한 곳에 자리한 극락전

본사 극락전은 본사 북쪽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양가구(樑架構) 박공(牔栱)(1)집이다. 위치로 보아 조금은 외지고 규모는 여타 법전에 비해 크지 않아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나름대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도 한다. 본 법전은 불기 2503(己亥)년 8월 15일 불성 배성관(佛性 裵聖寬) -癸未生- 거사의 시주로 창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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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이야기지만 극락전을 아미타전(阿彌陀殿) 이나 무량수전(無量壽殿) 혹은 수광전(壽光殿)이라고도 부른다. 극락전이라 함은 아미타불께서 건립하신 국토의 이름으로 법전의 명칭을 삼은 것이다.

한편 무량수전에서 말하는 무량수는 무량광(無量光)과 함께 범어 아미타(Amitābha 또는 Amitāyus)의 한역(漢譯)인바, 무량수전 또는 아미타전이라 함은 극락국토의 주불이신 부처님의 명호를 법전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본 법전에 들면 아미타불께서 주존으로 계시고, 관음·세지 양대 보살께서 좌우 협시로 계신다. 한 마디로 대웅전이 주로 영산회상(靈山會相)을 보이고 있음에 비해 아미타전은 아미타불의 법회인 미타회상(彌陀會相)을 나타내고 있다. 수광전은 무량수 무량광에서 끝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2> 미타신앙의 실체

불자든 아니든 ‘나무아미타불’ 6자의 성호(聖號)를 모르는 이가 없음이 증명하듯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미타신앙’만큼 민중과 애환을 같이해온 신앙도 없을 것이다.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있어서 태초이래로 끊임없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장생불사와 무한한 지혜일 것이다. 그럼에도 단명하거나 무지한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많았고 이로 인해 실의와 절망에 빠져 허덕이는 일 또한 비일비재한 것이 실정이다.

미타신앙은 무량수에 의해 불사(不死)에 대한 희망을 만족시키고, 무량광(無量光)에 의해 무지(無智)를 극복하고 있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미타신앙은 현세에 대한 절망의 치유라는 점에서 민중신앙화 하게 되었고 통일신라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그 영역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즉 이곳을 찾는 사람의 대부분이 슬픈 사연을 안고 오지만 이 곳에서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된다는 점을 들어 민중과 애환을 함께 한다고 한 것이다.

<3> 민족의 슬픔과 어버이의 비원(悲願)이 서린 곳

한편 본사 극락전의 창건 연대는 앞에서 언급했듯 그리 깊지 않다. 본 법전의 창건에 얽힌 유래를 보면 짐짓 때를 기다려 중생을 깨우치려 하신 특별한 뜻이 있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다음에 소개되는 내용은 설화가 아닌 실화이다.

6·25가 우리 민족에게 남긴 상처는 필설로 다할 수 없다. 본사 극락전도 그 상흔의 하나다. 창건 연기를 밝힘이 마치 아물지 않은 딱지를 떼는 것 같아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감행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인연법을 믿고 부처님께 귀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6·25가 발발하자 “적군을 퇴치하고 있으니 국민은 피난가지 않아도 된다,”는 당시 대통령 이승만의 국민 기만적 방송이 있었다. 민족의 따뜻한 피를 믿는 선량한 사람 대부분은 피난을 가지 않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배성관 거사 내외분도 슬하의 3남 3녀와 함께 자택에 남아있으면서 9·28수복을 맞게 되었다. UN군의 공습이 끊임없이 이어지더니 당시 주소가 남대문로 3가 100번지인 배거사의 3층 가옥 -지금 그 자리에는 한국은행 별관이 있다- 에 화마에 휩싸이고 말았다. 당시 자제들과 함께 지하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배거사 내외분은 6남매를 지하실에 남겨둔 채 불을 끄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때였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포탄 한발이 배거사의 집 지붕위로 떨어졌고, 집은 주저앉듯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손쓸 여가도 없이 지하실 입구는 막혀버렸다. 망연자실한 배거사 부부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살려달라’는 6남매의 비명 같은 환청(幻聽)뿐이었다. 양손이 다 벗겨져 뼈가 드러나도록 지하실 입구를 찾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주위를 향해 도움을 청했지만 그 역시 허사였다. 세월이 가면 잦아들 것 같았던 6남매의 환영과 환청은 오히려 더 또렸해 왔다. 배거사 부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실성하여 거리를 헤매다 무엇에 끌리듯 봉원사로 오게 되었다. 명부전에 들어가 지장보살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원망도 하고 애원도 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광인이었다.

<4> 재물은 모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먼저 정신을 차린 부인 김금봉(金今奉) 보살은 남편을 위로하며, 이 모두가 업보임을 말했으니 그 사연의 대강은 이랬다.

배거사는 일자무식이었으나 사업에는 귀재였다고 한다. 그의 뛰어난 수완은 골동품을 모으는 데서 그 진가를 발휘해 당시 제일인자였다고 한다. 골동품을 식별하는 재주도 비범했거니와 흥정을 하는데도 그 값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재물을 관리하는 데도 철저하여 탁발승이 오면 문을 아예 잠가버렸으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다.

한 번은 ‘인(人) 비늘’ 즉, 장기간 목욕을 하지 않아 생기는 일종의 때를 구하는 사람이 있자 거침없이 자신의 정강이를 걷고 비늘을 긁어 팔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구한말 몸이 허약한 순종(純宗. 1874~1926)이 자라[鼈]를 구함에 자라를 구해 바치며 자라의 목 베기를 수도 없이 하였다 한다. 더 이상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기로 그만 두거니와 이렇듯 돈의 노예로 살아오면서 남에게 못할 일을 많이 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제정신이 든 배거사도 그간 자신이 저지를 악업을 인정하고 참회하였다. 그 표시로 일제 단발령에도 간직해 온 상투를 스스로 자르고 삭발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당대의 고승이신 화응(華應) 선사를 스승으로 득도하여 ‘불성(佛性)’이라는 불명을 받고 부처님의 제자로 새 인생을 살게 되었다.

<5> 미륵존불과 아미타불께 귀의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지금까지 지어온 죄업을 참회하는 것과 비명에 간 6남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뿐이었다. 재산의 정리하여 봉원사 도량에 미륵불을 모셔 이 땅이 무고안온의 정토이기를 기원하고, 아미타불의 명호를 새긴 ‘나무아미타불’ 비(碑)를 세워 오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염불하는 인연을 짓도록 했다.

그뿐 아니라 6남매의 안식처이자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귀의처로 극락전을 창건했다. 전면 3칸 측면 1칸으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마지막 순간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느끼기에 족한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법전 앞에 자그마한 7층 석탑을 쌓아 못 다한 부모자식의 정표로 하였다.

동불당(東佛堂) 건립에도 대시주가 되어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 구품연지(九品蓮池)를 상징하는 연못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많은 중생들의 열뇌를 쉬게 하고, 6남매가 구품연대 가운데 왕생하기를 발원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유명한 곳은 영주의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을 꼽고 있다. 이렇듯 유명한 이유는 무량수전의 건축미가 빼어나서이기도 하지만 의상대사와 선묘(善妙)낭자와의 애틋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설화라면 본사 극락전의 연기는 실화이기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6> 연리목(連理木)이 아닌 자애수(慈愛樹)

나무가 서로 가까이 자라면서 성장한 줄기가 맞닿아 줄기가 합쳐져 자라는 현상을 연리목(連理木)이라 한다. 비슷한 현상으로 연리지(連理枝) 현상이 있는데 가지가 연결된 것을 말한다. 연리목이나 연리지는 모두 희귀하게 여겨지지만 서로 접붙이기가 가능한 나무끼리 연리가 가능하다. 때문에 이런 현상은 남녀 간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하여 사랑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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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났다. 극락전을 바라보며 왼편에 접붙이기가 가능하지 않은 느티나무와 단풍나무가 연리목의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서이겠지만 본사 스님들에게는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한 아름이 조금 넘는 느티나무에 어린아이처럼 안겨있는 단풍나무! 비명에 보낸 자식을 못 잊는 배거사 내외분의 안타까움과 자애가 느낌표처럼 다가오는 그런 모습이다. 그래서 봉원사에서는 그 앞에 ‘자애수(慈愛樹)’라는 표지석을 세워놓고 이미 고인이 된 배거사 양주분과 6남매의 왕생극락을 발원하고 있다.

끝으로 본 법전의 주련 내용을 소개하며 배거사 양주분과 6남매의 왕생극락을 거듭 발원하는 바이다.

極樂堂前滿月容(극락당전만월용) 서방정토 극락세계 만월모습 아미타불
玉毫金色照虛空(옥호금색조허공) 미간백호 금색광명 온허공을 비추시니
若人一念稱名號(약인일념칭명호) 그누구든 일념으로 미타명호 칭하오면
頃刻圓成無量功(경각원성무량공) 순식간에 무량한공 원만하게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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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註)-

(1) 牔栱(박공) ; 合閣(합각)머리나 마루머리에 八 자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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