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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각집동안거(冬安居) - 정각(正覺)으로 떠나는 터미널이 열기와 설레임으로 붐빈다

최고관리자님    작성일2017-10-12 15:48:20    755    0
동안거(冬安居) - 정각(正覺)으로 떠나는 터미널이 열기와 설레임으로 붐빈다

 

내용

【요지】

1. 여행자에게는 지도와 나침반, 수행자에게는 삼법인이 필수품이다.
2. 포스트잇과 닮은 총명지(聰明紙)는 ‘제행무상’의 이정표다.
3. 삼법인의 도리를 입증해 주는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고맙기만 하다.
4. 유토피아(Utopia) 구현의 절대조건은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내용】

사교입선(捨敎入禪 ‘교’를 버리고 ‘선’에 든다)이라는 말이 있다. 말이나 글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직접 살피라는 의미로 선가에서 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수행을 길[道]에 견주거니와 정각에로의 여정에 나서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으니 ‘삼법인(三法印)에 대한 이해’다. 먼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지도와 나침반이 필수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사교(捨敎)’ 즉, 교를 버리라고 함은 손가락만 바라보고 달을 보지 않음을 경계하는 말이지 손가락 자체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버릴 ‘교(敎)’도 없으면서 이런 말만 듣고 앵무새처럼 되뇐다면, 한 푼 없는 사람이 사재를 털어 가며 자선사업 하는 사람을 비웃는 것과 다르지 않다.
때는 바야흐로, 시월! 선원, 율원, 강원, 염불원이라는 터미널에 정각을 향해 떠나려 몰려드는 여행객들의 열기와 설렘으로 분주한 때다. 나름대로 준비가 철저하겠지만 도반의 반열에 들고 싶어 앞서 말한 필수품인 삼법인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1] 제행무상(諸行無常) -포스트잇과 총명지(聰明紙)-

‘포스트잇(Post­it)’이 책을 보거나 서류 정리하는 사람에게 필수품이 된지 이미 오래다. 붙이고 떼는 것도 간편하지만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장점까지 있다. 포스트잇이 일반화되며 우리말로 이름을 붙일 필요를 느꼈던지 ‘국립국어연구원’이 운영하는 ‘모두가 함께 하는 우리말 다듬기’에서는 포스트잇의 다듬은 말로 ‘붙임쪽지’를 최종 선정했다고 한다.⑴
그런데 한자어이기는 하지만 사찰에서는 일찍부터 그 ‘붙임쪽지’를 ‘총명지’라 불러왔다. 그렇게 명명하게 된 착상이 매우 기발한데 이치인즉 이렇다.
많은 대중이 한 절에 머무는 경우 각자 능력에 따라 직책을 맡게 된다. 일종의 분업이다. 이때 직책명과 담당자 이름이 적힌 방(榜)을 만들어 붙이는데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대체로 대방 하판(下版. 아랫목)의 길이만큼 창호지를 가로로 이어놓고, 가로 세로 약 15㎝ 안팎의 커다란 글씨로 직책명을 차례로 적어 놓는다. 이를 ‘용상방(龍象榜)’⑵이라 부른다.
그런데 직책을 맡은 담당자 이름은 직책명과 달리 용상방에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가로 3cm 세로 5cm 정도의 조그만 색지(色紙)에 써서 직책명 밑에 붙인다. 붙일 때, 풀칠은 언제든지 힘 안들이고 떼어 낼 수 있도록 색지 이면(裏面) 상단에 조금만 칠한다. 포스트잇과 너무도 닮아있다. 빨강, 파랑, 노랑 등 물감을 들인 것이 그렇고, 풀칠을 끝에다만 살짝 하는 것도 그렇다.
앞에서 기발하다 한 것은 이 색지의 이름을 총명지라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불교에는 진리의 여부를 가리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삼법인(三法印)이 그것인데,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등 세 가지가 그 덕목이다. 이 기준에 맞으면 나찰(羅刹)의 말일지라도 진리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설사 금구(金口)이신 부처님 말씀일지라도 마설(魔說)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불교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외치고 무문위문(無門爲門)을 주장한다. 자! 그 가운데 첫 번째 덕목이 제행무상이다. 시간 위에 존재하는 것은 예외 없이 덧없다는 말씀인데, 그 이치를 ‘총명지’는 일깨워 주고 있다. 산(山)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겠지만 물이야 흘러가는 것. 직책은 산과 같고 담당자는 물과 같은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치를 알면 총명하고, 그렇지 못하면 무지한 것이 된다. 용상방에 붙어 있는 각 소임자의 법명이 곱게 물들인 색지만큼 예쁘게 붙어 있지만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지?! 총명지는 붙였다 떼면 자국이라도 남지만 요즈음 포스트잇은 그나마 없다. 총명도 그처럼 진화하면 성불의 시기도 그만큼 앞당겨 지련만…

[2] 제법무아(諸法無我) -뒤바뀐 몸-

요즈음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지 눈부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신세대는 물론 전문가조차도 숨 가쁘게 여기는 것 같다.
일례로 과학과 의학의 합작이랄 수 있는 장기이식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난자(卵子)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것을 배아줄기 세포배양이라 한다는데, 신체의 일부가 배양되어 성장하면 난치나 불치병 환자들에게 이식하여 생명을 살리는데 기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더 이상의 언급은 의학에 문외한인 내게는 무리지 싶어 『중경찬잡비유경(衆經撰雜譬喩經)』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기로 소개한다.

옛날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다 빈집에서 혼자 잤다. 한밤중에 귀신 하나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메고 와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 뒤에 또 다른 귀신이 쫓아와 화를 내며 먼저 온 귀신을 꾸짖었다.
“이 시체는 내 것인데 왜 네가 메고 왔는가.”
두 귀신은 각기 한 팔씩 잡고 서로 다투더니, 먼저 온 귀신이 말했다.
“여기 사람이 있으니 물어보자. 이 시체를 누가 메고 왔는지” 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 두 귀신은 모두 힘이 세다. 바른 말을 해도 죽을 것이요, 거짓말을 해도 죽을 것이다. 어차피 죽음을 면치 못할 바에야 왜 거짓말을 하겠는가.’ 그래서,
“먼저 온 귀신이 메고 왔다.”고 본 대로 말하였다.
뒤에 온 귀신은 매우 화를 내며 그 사람의 팔을 뽑아 땅에 내던졌다. 그러자 먼저 온 귀신은 그 즉시 죽은 사람의 한 팔을 뽑아 보충시켜 주었다. 이와 같이 뒤에 온 귀신은 그 사람의 두 다리, 머리, 옆구리 등을 차례로 뽑아 땅에 버렸고, 먼저 온 귀신은 그때마다 죽은 사람의 그것들로 붙여주어 본래와 같이 되었다. 그러더니 두 귀신은 땅바닥 위에 나뒹구는 바뀐 사람의 몸을 같이 나눠먹고 입을 닦으며 떠났다. 갑자기 변을 당한 그 사람은 생각하였다.
‘우리 부모께서 내 몸을 낳아주셨는데, 저 두 귀신이 내 몸을 모두 다 먹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지금 나의 이 몸은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는 과연 내 몸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만일 몸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남의 몸이요, 없다면 지금 이 몸은 무엇인가’고.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마음이 헷갈리고 어지러워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이튿날 아침 앞의 나라로 가서 불탑과 스님들이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일은 여쭙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 몸이 있는지 없는지를 여쭙니다.”고 하니, 비구들이 묻기를,
“그대는 누구인가.”라 하였다.
“나도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라 하며, 스님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그러자 모든 비구가 말하였다.
“이 사람은 스스로 나 없음을 안다. 곧 제도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그대 몸에는 본래부터 ‘나’라는 것이 없다. 지금만이 아니다. 다만 지수화풍 네 가지 요소가 모였기 때문에 ‘내 몸’이라고 헤아리는 것이다.”
그는 곧 제도되어 도를 닦아 모든 번뇌를 끊고 아라한과를 얻었다.⑶


예전에는 경(經) 가운데서, 지금은 의학에서, 공간 위에 자리한 것은 모두가 인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삼법인(三法印)의 두 번째 덕목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이치를 깨닫는다. 인연으로 이루어진 유위법(有爲法)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고정적 실체가 아니다. 애초부터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자신을 진정한 자아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 자체가 오해다. 호흡을 계속하면서, 땀을 흘리면서, 용변을 보면서, 심지어는 수술과 같은 일로 자신의 일부를 적출함을 보면서 까지도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 것은 집착이고 착각일 뿐이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고맙기만 하다.

[3] 열반적정(涅槃寂靜) -유토피아(Utopia)-

환자가 원하는 것은 그 환부의 통증이 사라지고 재발하지 않는 것이지 그 부위 자체가 없어지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의 이상인 열반은 범어 니르바나(nirvāṇa)의 음역이다. 이를 의역하면 적멸(寂滅)이다. ‘적(寂)’은 중생이 지니고 있는 사고팔고(四苦八苦)⑷라는 고통이 가라앉음을 의미하고, ‘멸(滅)’은 고통의 원인을 발본색원하여 다시 반복됨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혹자는 열반을 아무 것도 없는 허무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인식하면서도 열반을 구하려 한다면 두통이 있다 해서 머리 자체가 없애버리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상향을 나타내는 Utopia는 원래 ‘토마스 모어’⑸가 그리스어 ‘없는(ou-)’과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란다. 영역하면 ‘no where’가 된다. 그런데 재치 있는 사람이 ‘where’에서 ‘w’자(字)를 앞의 ‘no’ 뒤쪽으로 옮겨 놓았다. 그랬더니 ‘now here’가 된 것이다. 참된 행복이란 통증과 그 원인만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w’자(字)를 옮겨놓는 그런 지혜다.
불자들이 즐겨 염송하는 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頓捨貪嗔癡(돈사탐진치) 독중의독 삼독심은 미련없이 버리시고
常歸佛法僧(상귀불법승) 한결같이 삼보님께 지성귀의 하시면서
念念菩提心(염념보리심) 일구월심 생각마다 깨달음을 향하시면
處處安樂國(처처안락국) 처한곳이 그어디든 안락국토 이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탐욕의 사라짐, 분노의 사라짐, 어리석음의 사라짐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 삼독의 불을 끈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취소(吹消)’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다소 소극적이었다면, 다음과 같이 적극적인 방법으로 생각해도 좋다. 이른바 열반사덕(涅槃四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시공 위에 자리한 유위법은 예외 없이 무상(無常)·개고(皆苦)·무아(無我)·부정(不淨)이지만, 감에서 느끼는 단맛은 서리를 견디며 떫은맛 탄닌(tannin)이 변한 것이듯, 그 유위법이 삼동(三冬)의 정진을 통해 무위법(無爲法)인 상·락·아·정으로 거듭 태어난다는 말이다.
터미널에 운집한 납자 여러분께 도반의 입장에서 이 사람이 지닌 생각이 혹시 참고가 되실까 조심스러운 말씀을 건네 본다. 참선하는 가운데 묘한 경계가 나타난다 해서 끄달리면 안 된다. 율(律)을 익히며 또 다른 인연의 사슬을 만들면 안 된다. 경(經)의 말씀일지라도 글에 체(滯)하면 안 된다. 염불을 한다면서 소리에 팔려서도 안 된다. 어떤 이치이건 어떤 경계이건 자신의 마음을 묶어둔다면 ‘삼법인’의 이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말세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몸을 받았고 불법을 만났으니 이 어찌 귀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동안거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는 열반의 문고리를 잡은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지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신심과 지혜 그리고 용기다.

성불하소서.

-주(註)-

⑴머니투데이. 2004. 1. 17.
⑵『釋門儀範』 卷下 p.164 / 三冬結制榜, 證明, 會主, 禪德, 秉法, 魚山, 梵音, 梵唄, 持殿, 唱佛, 執金, 獻香, 奉茶, 看堂, 頌子, 道者, 侍者, 鍾頭, 判首, 祝上, 表白, 通謁, 施食, 獻食, 對靈, 淨桶, 火臺, 地排, 書記, 別座, 都監, 察衆, 立繩, 維那 (年月日)
⑶『衆經撰雜譬喩經』 卷上 (大正藏 권4 p.531c)
⑷사고는 생·노·병·사의 네 가지를 말한다. 여기에 다시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⑸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 : 이상적 국가상 그린 명저 『유토피아』를 쓴 영국의 정치가·인문주의자·르네상스 문화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에라스뮈스와 친교를 맺었다. 외교교섭에도 수완을 발휘했다. 해학취미의 소유자로 명문가·논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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